진사(進士)  김영균(金永鈞)


1441년 부(父) 계권(係權)과 모(母) 예천권씨(醴泉權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세경(世卿)이다.
1465년 세조(世祖) 11년 식년시(式年試)에 입격(入格)하였다.(1465년 사마진사시 방목에 등재)
원래 영균(永鈞)이었으나 명나라 신종(神宗)의 어휘인 익균(翊鈞)을 피휘하여 후대의 족보에는 ‘永勻’으로 표기했다.
원래 기록이 없어서 조졸(早卒)하신것으로 전해왔으나 성현(成俔)이 쓴 삼구정기(三龜亭記)를 보면 上舍 金世卿氏 以 其鄕 豐山縣 三龜亭之狀。求記於余。 상사(진사시에 입격한 사람) 김세경(영균의 자)씨가 그의 고향 풍산현 삼구정의 형상에 대한 기문을 써줄것을 나에게 부탁했다는 것이 첫줄에 나온다.
1496년에 이 기문을 썻으며 퇴계집에 실려있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행장(行狀)을 보면 구로회(九老會)의 회원으로 등재되어 있고 1519년 애일당(愛日堂) 경로잔치에 참석하시어 시(詩)를 남기신것으로 보아 적어도 79세 이상은 사신것이 확실하다.

애일당(愛日堂) 경로잔치에서 지으신 시(詩)는

美事合傳朝野設(미사합전조야설) 아름다운 일 회자되어 조야에 전해지고
縟儀宜畵子孫連(욕의의화자손연) 행사 그림으로 그려 자손으로 이어지네
白頭我亦頻承喚(백두아역빈승환) 백발의 나 또한 자주 초청을 받아
叨揖淸光忝錦筵(도읍청광첨금연) 맑은 모습 자주하고 비단 자리 더렵혔네

이 시의 원문은 농암종택에 친필로 보존되어 있다.

애일당 구로회의 회원이 대부분 예안 사람인데 풍산 사람이 회원이 된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고 자주 초청된것으로 보아 농암과의 친분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과] 세조(世祖) 11년(146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1등(一等) 3위


안동김씨대종중
진사공(영균)파
영균(永鈞)
자(字)세경(世卿)
생(生)1441년 신유(辛酉) 월 일
관직(官職)진사(進士)
 문화류보(文化柳譜)에는 관직은 봉사(奉事)라 하였다.명나라 신종의 어휘인
  익균(翊鈞)을 피휘한다하여 균자의 금(金)변을 뺐으나 다시 복명하였다.
묘(墓)안동시(安東市) 풍산읍(豊山邑) 소산리(素山里) 역동(嶧洞)
자좌(子坐)
묘표(墓表)가 있다
배(配)의인(宜人)문화류씨(文化柳氏)
묘(墓)부군조(府君兆) 아래
자좌(子坐) 상하분(上下墳)
묘표(墓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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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9 세10 세11 세12 세
혁(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