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進士)  김영균(金永鈞) |
![]() ![]() 자(字)는 세경(世卿)이다. 1465년 세조(世祖) 11년 식년시(式年試)에 입격(入格)하였다.(1465년 사마진사시 방목에 등재) 원래 영균(永鈞)이었으나 명나라 신종(神宗)의 어휘인 익균(翊鈞)을 피휘하여 후대의 족보에는 ‘永勻’으로 표기했다. 원래 기록이 없어서 조졸(早卒)하신것으로 전해왔으나 성현(成俔)이 쓴 삼구정기(三龜亭記)를 보면 上舍 金世卿氏 以 其鄕 豐山縣 三龜亭之狀。求記於余。 상사(진사시에 입격한 사람) 김세경(영균의 자)씨가 그의 고향 풍산현 삼구정의 형상에 대한 기문을 써줄것을 나에게 부탁했다는 것이 첫줄에 나온다. 1496년에 이 기문을 썻으며 퇴계집에 실려있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행장(行狀)을 보면 구로회(九老會)의 회원으로 등재되어 있고 1519년 애일당(愛日堂) 경로잔치에 참석하시어 시(詩)를 남기신것으로 보아 적어도 79세 이상은 사신것이 확실하다. 애일당(愛日堂) 경로잔치에서 지으신 시(詩)는 美事合傳朝野設(미사합전조야설) 아름다운 일 회자되어 조야에 전해지고 縟儀宜畵子孫連(욕의의화자손연) 행사 그림으로 그려 자손으로 이어지네 白頭我亦頻承喚(백두아역빈승환) 백발의 나 또한 자주 초청을 받아 叨揖淸光忝錦筵(도읍청광첨금연) 맑은 모습 자주하고 비단 자리 더렵혔네 이 시의 원문은 농암종택에 친필로 보존되어 있다. 애일당 구로회의 회원이 대부분 예안 사람인데 풍산 사람이 회원이 된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고 자주 초청된것으로 보아 농암과의 친분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과] 세조(世祖) 11년(146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1등(一等) 3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