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김병화(金炳華)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31년 일본의 중국진출이 가시화함에 따라 중국과 상해 임시 정부 사이에 연대가 형성되었다.

1934년 2월 김구(金九)는 통일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의 후원을 받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였다.

1934년 10월 한인특별반 입교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던 노태연(盧泰然)의 권유로 육군군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하였다. 예비반에 편성되어 있다가 1935년 9월 제11기 공병대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였다.

1936년 8월 14일 김순곤(金順坤)‧김파(金波)‧김학무(金學武) 등과 함께 상해에 위치하고 있던 일본 총영사관을 폭파하기로 계획하고 비밀리에 폭탄을 제조하였다. 그러나 제조 도중 폭탄이 갑작스럽게 폭발하여 불의의 사고로 순국하였다.

199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문과]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311위(340/1055)


안동김씨대종중
문정공(상헌)파
병화(炳華)
자(字)성협(聖協)
생(生)1861년 신유(辛酉) 월 일
관직(官職)갑오(甲午)진사(進士)
상훈(賞勳)건국훈장 애국장
배(配)양주조씨(楊州趙氏)
생(生)1856년 병진(丙辰) 월 일
 부(父)사과(司果) 익림(益林)

Warning: mysql_fetch_array(): supplied argument is not a valid MySQL result resource in /home/andong/www/vksrhks/php/person.php on line 562
21 세22 세23 세24 세25 세
이덕(履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