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大司憲)  김정규(金貞圭) |
자는 도지(道知)이다. 아버지는 김병문(金炳聞)이나 김병국(金炳國)에게 입양되었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었으나 안산신도시 건설에 따른 도시화로 1979년 화장되었다. 묘표의 비문은 양부(養父) 김병국이 찬(撰)하였고 글씨는 양자(養子) 김용진(金容鎭)이 썼으며 지운영(池雲英)이 전각하였다. 1885년(고종 22) 4월 도당록(都堂錄)에서 권점(圈點)을 받았다. 이해 12월 부사과로 재임 중에 부친인 김병국의 몸이 좋지 않자 고종을 소견하여 김병국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1886년(고종 23)에는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에 제수되었으며 1888년(고종 25)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제수되었다. 1890년(고종 27)에 행해진 도목정사에서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제수되었고 1893년(고종 30)에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에 제수되었다. 1890(고종 27) 육조의 참판 동지춘추관사 동지의금부사 동지경연사 동지돈녕부사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경연특진관 동지중추부사 동지성균관사 사헌부대사헌을 역임하다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문과] 고종(高宗) 19년(1882) 임오(壬午)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3등(三等) 177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