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참판(吏曹叅判)  김병조(金炳朝)


자는 회경(晦卿). 김이장(金履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태순(金泰淳)이고 아버지는 판서 김교근(金敎根)이며 어머니는 오재선(吳載選)의 딸이다.

1820년(순조 20) 진사가 되고 그해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정언(正言)을 지낸 뒤 1827년 평안도안핵사(平安道按覈使)로 나가 당시 초산(楚山) 지방에 일어난 민란을 수습하고 착취가 심한 부사 서만수(徐萬修)를 파직시켰다.

1827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예방승지를 거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가 되어 상세(商稅)를 혁파하고 주전(鑄錢)에서 생기는 잉여로써 대신할 것을 건의하여 시행하였다. 그러나 심영석이 아버지 김교근과 함께 탐학으로 탄핵을 하여 유배되었다가1833년에 풀려나와 1836년 헌종2년에 이조참판(吏曹叅判)에 기용되었다.

1838년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가 되어 재직 중에 병사하였다.

[문과] 순조(純祖) 20년(1820) 경진(庚辰) 정시(庭試) 병과(丙科) 4위


안동김씨대종중
문정공(상헌)파
병조(炳朝)
자(字)회경(晦卿)
생(生)1793년 계축(癸丑) 10월 04일
관직(官職)기사(己巳)진사(進士)
경진(庚辰)문과(文科)
이조(吏曹)참판(叅判)
졸(卒)1839년 기해(己亥) 04월 21일
배(配)정부인(貞夫人)청송심씨(靑松沈氏)
생(生)1793년 계축(癸丑) 월 일
졸(卒)1847년 정미(丁未) 09월 19일
묘(墓)충주시(忠州市) 가금면(可金面) 가흥리(可興里) 선조(先兆) 남쪽
오좌(午坐) 합폄(合窆)
 부(父)영상(令尙)
 조(祖)목사(牧使) 공유(公猷)
 증조(曾祖)현희(賢希)
 외조(外祖)참판(叅判) 류의양(柳義養) 본(本)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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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22 세23 세24 세25 세
이장(履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