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김계한(金啓漢)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67년(고종 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56년 사망하였다.
김계한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가운데 김계한은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이 계획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김계한은 김병우·김익현·김계한·황인규·이인홍과 함께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3월 18일 낮 12시경 기독교인 30여 명을 이끌고 곡물전(지금의 신한은행과 농협 안동지부 중간 지점) 앞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동문통에서 유림들이 들어와 합세하였다. 그 시위대는 송기식을 비롯한 류동붕(柳東鵬)·송장식(宋章植)·송홍식(宋弘植)·권중호(權中鎬) 등 유림들이 이끌고 있었다. 김계한은 장터에 모인 다수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으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김계한은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2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복역하였다.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안동김씨대종중
휴암공(상준)파
계한(啓漢)
자(字)신호(信浩)
생(生)1868년 무진(戊辰) 06월 17일
상훈(賞勳)대통령표창
 1919년 3월 18일 경북 안동 읍내 시장에서 유동붕(柳東鵬) 등과 함
 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체포되어 징역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졸(卒)1956년 병신(丙申) 05월 22일
묘(墓)안동시 법상동(法尙洞) 뒷산
계좌(癸坐)
배(配)안동권씨(安東權氏)
생(生)1870년 경오(庚午) 월 일
졸(卒)1968년 무신(戊申) 08월 12일
묘(墓)안동시 금곡동(金谷洞) 뒷산
 부(父)명수(明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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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세25 세26 세27 세28 세
병연(炳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