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병마절도사(黃海兵馬節度使)  김시태(金時泰) |
1682년(숙종 8)~1722년(경종 2). 조선 중기 무신. 자는 대래(大來)이다. 김상준(金尙寯)의 후손으로@ 부친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김성구(金盛久)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시정(金時鼎)‧김시승(金時升)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21년(경종 1) 당시 황해병사(黃海兵使)로 재직 중이었으나@ 사헌부(司憲府)에서는 김시태(金時泰)가 권흉(權凶)의 친속(親屬)이 되어@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여 권씨 가문에 바쳤다고 탄핵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철산부(鐵山府)로 유배되었다. 1722년(경종 2)에 사화에 연루되어@ 백열이(白烈伊)‧이삼석(李三錫) 등과 함께 국청(鞫廳)에 불려가 심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1725년(영조 1) 신임사화 때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자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의 관직이 복관되었다. 이후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시호 충의(忠毅)를 하사받았다. [무과] [무과] 숙종(肅宗) 40년(1714) 갑오(甲午)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9위(2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