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성(大司成)  김덕규(金德圭) |
생부는 부사공(상관)파 김병관(金炳瓘)이나 문충공(상용)파 김병삼(金炳三)에게 입양되었다. 자(字)는 공윤(公潤)이다. 영상(領相) 김수흥(金壽興)의 후손으로 고조는 김이우(金履祐)이고 증조부는 김이순(金彛淳)이며 조부는 김양근(金陽根)이다. 부친 김병관(金炳瓘)과 모친 신명현(申明顯)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71년(고종 8) 성균관(成均館)에서 실시한 인일제(人日製)에 참여하여 윤용구(尹用求)‧조종익(趙鍾翼) 등과 함께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임금으로부터 풍류(風流)를 하사받았다. 이후 이호익(李鎬翼) 등과 함께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로 임명되었다. 1878년(고종 15) 진하(陳賀) 때 선교관(宣敎官)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으며 왕실의 상사(喪事) 때 종척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다. 1883년(고종 20)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다.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