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조하(奉朝賀)  김이양(金履陽)


자는 명여(命汝). 할아버지는 김시술(金時述)이고 아버지는 김헌행(金憲行)이며 어머니는 윤지술(尹志述)의 딸이다. 초명은 김이영(金履永)이었으나 예종과 이름이 비슷하여 피휘(避諱)하기 위해 김이양이라 개명할 것을 청해 왕의 허락을 받았다.

1795년(정조 19) 생원으로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순조3년(1803년) 이조참의 에 올랐고1812년(순조 12) 함경감사(咸鏡監司)로 있으면서 그 지방의 기강확립에 힘쓰는 한편 고장주민들의 민생고 해결에 노력하였다.또한 이듬해에는 계문(啓文)을 올려 변경지방 군사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건의하는 동시에 어염선세(漁鹽船稅)와 둔전세(屯田稅) 및 마필(馬匹)의 헌납을 감면해주도록 주청하여 허락을 받았다.이어서 함경도의 진환곡(賑還穀) 확보를 위하여 영남포항창(嶺南浦項倉)의 곡식 3만석을 이급(移給)해 주도록 주청하여 2만 3000석을 얻는 데 성공하는 등 치적을 남겼다.

1815년 차대(次對)에서는 함경감사 때의 경험을 들어 국경지방 군사제도 개선을 주장 허락을 받았다.같은 해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 예조판서와 좌참찬(左叅贊) 이조판서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지내고 이듬해 호조판서가 되어 토지측량의 실시와 세제 및 군제의 개혁 화폐제도의 개선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818년 병조판서 예문제학(藝文提學) 호조판서 1819년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이 되었고 이듬해 판의금부사를 거쳐 좌참찬에 올랐다.1821년 형조판서 1822년 예조판서 1823년 호조판서 1824년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를 1826년 예조판서를 거쳐 봉조하(奉朝賀)에 봉해졌다.

1844년(헌종 10)에는 만 90세가 되어 궤장(几杖)이 하사되었으며 그 이듬해 사망했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추증되었다.




정조(正祖) 7년(1783) 계묘(癸卯) 증광시(增廣試) [생원] 1등(一等) 3위(3/100)
[문과] 정조(正祖) 19년(1795) 을묘(乙卯) 정시(庭試) 을과(乙科) 1[亞元]위


안동김씨대종중
문충공(상용)파
이양(履陽)
구휘(舊諱)이영(履永)
자(字)명여(命汝)
호(號)연천(淵泉)
생(生)1755년 을해(乙亥) 12월 12일
관직(官職)계묘(癸卯)생원(生員)
을묘(乙卯)문과(文科)
제학(提學)
기사(耆社)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이조(吏曹)판서(判書)
봉조하(奉朝賀)
졸(卒)1845년 을사(乙巳) 04월 28일
배(配)정경부인(貞敬夫人)완산이씨(完山李氏)
생(生)1752년 임신(壬申) 월 일
졸(卒)1828년 무자(戊子) 12월 18일
묘(墓)천안광덕면광덕산(廣德面廣德山)
자좌(子坐) 합폄(合窆)
 부(父)명상(明祥)
 조(祖)군수(郡守) 익지(翊之)
 증조(曾祖)좌의정(左議政) 관명(觀命)
 외조(外祖)홍성원(洪聖源) 본(本) 남양(南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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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19 세20 세21 세22 세
성익(盛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