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大司諫)  김성적(金盛迪)


자는 중혜(仲惠) 호는 일한재(一寒齋).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광현(金光炫)이고 아버지는 김수민(金壽民)이며 어머니는 윤형각(尹衡覺)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된 뒤 1684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5년에 정언(正言)이 되었으며 그해 홍문록(弘文錄)과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이듬해 부수찬(副修撰)·수찬을 거쳐 1687년 교리(校理)에 임명되어 옥송사(獄訟事)를 신속히 처리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어서 헌납(獻納)·부교리 등을 거쳐 1689년 이조좌랑을 지냈다. 1694년에는 이조정랑·겸문학·응교(應敎)·집의(執義)·사간·사인(舍人)을 차례로 역임하고 1696년에 양주목사(楊州牧使)가 되었으나 흉년을 당하여 굶주린 백성들의 구제에 힘쓰지 않았다 하여 삭직당하였다.그 뒤 곧 승지로 기용되었으며 대사간을 거쳐 1698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때 혹심한 식량난에 처해 청나라로부터 쌀 4만섬을 수입하였는데 이에 따르는 국가의 체면과 사상(私商)들의 농간을 우려하였다.1699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하였다.


[문과] 현종(顯宗) 10년(1669) 기유(己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5위


안동김씨대종중
문충공(상용)파
성적(盛迪)
자(字)중혜(仲惠)
호(號)일한재(一寒齋)
생(生)1643년 계미(癸未) 05월 08일
관직(官職)기유(己酉)진사(進士)
갑자(甲子)문과(文科)
대사간(大司諫)
충청(忠靑)관찰사(觀察使)
저서(著書)유고(遺稿)가있다
졸(卒)1699년 기묘(己卯) 03월 09일
배(配)숙부인(淑夫人)경주노씨(慶州盧氏)
생(生)1647년 정해(丁亥) 월 일
졸(卒)1713년 계사(癸巳) 01월 30일
묘(墓)공주 사곡(寺谷) 면계실(面溪室)
 갈(碣)은 대제학(大提學) 김진규(金鎭圭)가 짓고 부인지(夫人誌)는 족제
  삼연(三淵) 창흡(昌翕)이 지었다
임좌(壬坐) 합폄(合窆)
 부(父)부사(府使) 협(協)
 조(祖)전(銓)
 증조(曾祖)진사(進士) 팔원(八元)
 외조(外祖)임영(林蓂) 본(本) 교하(交河)

Warning: mysql_fetch_array(): supplied argument is not a valid MySQL result resource in /home/andong/www/vksrhks/php/person.php on line 562
15 세16 세17 세18 세19 세
상용(尙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