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음(圃陰)  김창즙(金昌緝)


자는 경명(敬明) 호는 포음(圃陰).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고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로 해주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형 김창집(金昌集)·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김창업(金昌業)과 함께 문장대가로 당시 육창(六昌)이라 불렸다. 조봉원(趙逢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82년(숙종 8) 20세로 『징회록(澄懷錄)』을 편집하였고 1684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교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하였다.1700년 아버지의 유문인 『문곡집(文谷集)』을 간행했다.

1710년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냈다.

문장과 훈고(訓詁)에 능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제자로는 유척기(兪拓基) 등이 있고 저서로는 『징회록(澄懷錄)』 1권과 『포음집(圃陰集)』 6권이 있다.





포음집(圃陰集)

저자 : 문정공(상헌)파  창즙(昌緝)

생(生) : 1662.09.28

졸(卒) : 1713.05.03

갑자(甲子)생원(生員) 왕자사부(王子師傅) 예빈시(禮賓寺)주부(主簿) 증(贈)이조(吏曹)판서(判書)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창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26년에 간행한 시문집.
6권 3책. 목활자본. 형 창흡(昌翕)이 편집하였고 조카 신겸(信謙) 등의 교열을 거쳐 1726년(영조 2) 유척기(兪拓基) 등이 간행하였다.
권말에 신겸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250수 권2∼4에 서(書) 33편 권5·6에 잡저로 해(解) 3편 변(辨) 6편 잡지(雜識)·일록(日錄)·서(序)·기행(記行) 각 1편 행장 2편 묘지명 1편 제문 12편 애사(哀詞) 1편 부록으로 연보·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간(書簡)은 주로 경전(經典)의 훈고(訓詁)에 관하여 논변이 많고 특히 동족인 김해(金楷)와는 심의(深衣)의 제도에 관한 견해를 주고받은 것이 4 5편이나 실려 있다.
먼저 여러 사람의 학설을 인용하여 견해의 차이를 밝히고 별도로 영(領)·임(袵)·몌(袂)·연(緣)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대기(戴記)』와 『가례』는 서로 다른 것이니 이 두 학설을 합일되게 하려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하였다.
잡저 중 「징회록서(澄懷錄序)」는 중국의 하(夏)·주(周)에서부터 송·명까지 산수에 관한 시만 뽑아서 한권의 책으로 만들고 그것을 만든 동기와 연혁을 밝힌 글이다.
「일록(日錄)」은 공부하는 중에서의 체험이나 병고 등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이밖에도 저자의 성리학의 깊은 연구를 대변하는 「이기변(理氣辨)」 및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과 『계곡만필(谿谷謾筆)』의 내용에 잘못된 것이 있음을 지적한 「잡지(雜識)」 등이 있다.
안동김씨대종중
문정공(상헌)파
창즙(昌緝)
자(字)경명(敬明)
호(號)포음(圃陰)
생(生)1662년 임인(壬寅) 09월 28일
관직(官職)갑자(甲子)생원(生員)
왕자사부(王子師傅)
예빈시(禮賓寺)주부(主簿)
증(贈)이조(吏曹)판서(判書)
저서(著書)포음집(圃陰集) 징회록(澄懷錄)
졸(卒)1713년 계사(癸巳) 05월 03일
배(配)증(贈)정부인(貞夫人)남양홍씨(南陽洪氏)
생(生)1662년 임인(壬寅) 월 일
졸(卒)1742년 임술(壬戌) 06월 29일
묘(墓)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 과천 반포리(盤浦里)
유좌(酉坐) 합폄(合窆)
 부(父)증(贈)참의(叅議) 처우(處宇)
 조(祖)감사(監司) 명일(命一)
 증조(曾祖)영의정(領議政) 서봉(瑞鳳)
 외조(外祖)현감(縣監) 조상변(趙相抃) 본(本) 풍양(豊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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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헌(尙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