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천현감((狼川縣監)  김시민(金時敏)


자는 사수(士修) 호는 동포(東圃)·초창(焦窓). 경기도 양주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성후(金盛後)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관찰사 조원기(趙遠期)의 딸이다.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다.

1732년(영조 8) 선공감역(繕工監役)이 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사직서령(社稷署令)·종묘서령(宗廟署令)·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진산군수(珍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1735년 낭천현감(狼川縣監)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치적이 많았으므로 환향할 때 읍민들에 의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으며 진산군수로 재직 시에는 문교진흥(文敎振興)에 힘써 많은 후진을 양성한 공으로 사직할 때 군민들이 사당을 세워 그 덕을 기리었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았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고체시(古體詩)는 독자적 경지에 도달 당시의 이병연(李秉淵)과 함께 시명(詩名)을 떨쳤다. 뒤에 김상훈(金相勛)·홍중주(洪重疇) 등 130여명이 그의 덕망과 효행을 나라에 주청 이조참판을 추증받았다.

저서로는 『동포집(東圃集)』 8권 4책이 있다.





동포집(東圃集)

저자 : 휴암공(상준)파  시민(時敏)

생(生) : 1681.10.13

졸(卒) : 1747.03.20

음(蔭)진산(珍山)군수(郡守)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시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61년에 간행한 시문집.
8권 4책. 목판본. 1761년(영조 37) 아들 면행(勉行)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윤봉조(尹鳳朝)와 한계진(韓啓震)의 서문 2편이 있고 권말에 신경(申暻)·김원행(金元行)의 발문 2편이 있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6에 시 899수 권7에 서(書) 18편 잡저 17편 권8에 제문 11편 가승(家乘) 7편 부록으로 행장·묘지명·묘갈명·묘표·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그의 시는 뛰어난 경지를 이루었으며 이병연(李秉淵)과 함께 당대에 시명을 떨쳤다.
권7의 서(書)에는 시사(時事)·문후(問候)·예제(禮制) 등에 관한 내용이 많다.잡저의 「제왕문성공집후(題王文成公集後)」는 왕수인(王守仁)이 경학에 있어서는 송나라 제현(諸賢) 이후에 제일인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자설을 절대적으로 신봉한 당시 유학계의 사정으로 보아 혁신적인 것이며 양명학에 관하여 새로운 연구를 개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동김씨대종중
휴암공(상준)파
시민(時敏)
자(字)사수(士修)
호(號)동포(東圃)
생(生)1681년 신유(辛酉) 10월 13일
관직(官職)음(蔭)진산(珍山)군수(郡守)
저서(著書)동포집(東圃集)
 효행(孝行) 으로써 이조참의(吏曺참議) 를 증직 받았고 자손의 귀(貴)
 로 이조참판(吏曺참判) 이추가로 증직되었다 또 의행(懿行) 으로 대신이경
 연에서 상주하여 특별히 좌참찬(左참贊) 에 증직되었다
졸(卒)1747년 정묘(丁卯) 03월 20일
묘(墓)휴암공조(休庵公兆) 남쪽 제二강(岡) 에 있다.
 묘표는 영의정 김재로(金在魯) 가 짓고 대사헌 홍봉조(洪鳳祚) 가 썼다
간좌(艮坐)
묘표(墓表)가 있다
배(配)증(贈)정부인(貞夫人)해주최씨(海州崔氏)
생(生)1681년 신유(辛酉) 월 일
졸(卒)1702년 임오(壬午) 01월 07일
묘(墓)같은 둔덕
묘좌(卯坐)
 부(父)판결사(判決事) 선(渲)
 조(祖)승지(承旨) 유해(有海)
 증조(曾祖)진사(進士) 전(澱)
 외조(外祖)황처양(黃處良) 본(本) 평해(平海)
배(配)증(贈)정부인(貞夫人)창원황씨(昌原黃氏)
생(生)1683년 계해(癸亥) 월 일
졸(卒)1739년 기미(己未) 02월 05일
합폄(合窆)
 부(父)현감(縣監) 만(뀔)
 조(祖)도정(都正) 신구(藎耉)
 증조(曾祖)찬(澯)
 외조(外祖)정랑(正郞) 류축(柳軸) 본(本) 문화(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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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17 세18 세19 세20 세
광욱(光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