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吏曹判書)  김시근(金蓍根) |
![]() 자(字)는 흥지(興之)이다. 1802년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뒤 의정부검상 헌납 이조참의 승지등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 1812년 가선대부(嘉善大夫)를 가자받고 다시 가의대부(嘉義大夫)를 가자받은뒤 1813년에는 자헌대부(資憲大夫))를 가자받았다. 1814년 공조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815년 정헌대부((正憲大夫)를 가자받은뒤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된뒤 곧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1816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되고 1817년에는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叅贊)을 거쳐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다. 다시 1820년에는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가 되었다. 1821년에 숭정대부(崇政大夫)를 가자받고 1822년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다. 1824년에 예조판서(禮曹判書) 1825년 공조판서(工曹判書)를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고 다시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 |